백범 김구

생애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
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
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
를 원한다.

연보

  • 1876
    (1세)
    음력7월11일 해주 텃골에서 태어남 - 아명은 창암(昌巖)
  • 1887
    (12세)
    과거를 위한 서당 공부 시작
  • 1892
    (17세)
    과거 낙방, 관상 공부, 병법서 탐독
  • 1893
    (18세)
    동학 입문, 김창수(金昌洙)로 개명
  • 1894
    (19세)
    동학접주 첩지를 받음 - 동학농민군 봉기, 청일전쟁
  • 1896
    (21세)
    치하포에서 일본인 스치다 척살 - 투옥
  • 1898
    (23세)
    탈옥, 공주 마곡사에서 스님 원종이 됨
  • 1899
    (24세)
    환속, 해주 고향에 돌아옴
  • 1900
    (25세)
    이름을 구(龜)로 고침
  • 1903
    (28세)
    기독교에 입문
  • 1905
    (30세)
    상소, 공개 연설 등 구국운동, 신교육 사업 - 을사늑약 체결
  • 1904
    (29세)
    최준례와 결혼
  • 1908
    (33세)
    양산학교 교사
  • 1909
    (34세)
    재령 보강학교 교장
  • 1911
    (36세)
    일제 민족주의자 총검거, 징역 15년 선고
  • 1912
    (37세)
    이름을 구(九), 호를 백범(白凡)으로 고침
  • 1919
    (44세)
    상해 망명,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됨
  • 1922
    (47세)
    임시정부 내무총장이 됨
  • 1924
    (49세)
    임시정부 노동국총판을 겸임
  • 1926
    (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 1929
    (54세)
    백범일지 상권 탈고,상해 교민 단장이 됨
  • 1930
    (55세)
    한국독립당 창당
  • 1931
    (56세)
    한인애국단 창단, 이봉창 의거 계획 세움
  • 1932
    (57세)
    이봉창•윤봉길 의사 의거, 임정 항주 이사
  • 1934
    (59세)
    한인특무독립군 조직
  • 1935
    (60세)
    한국국민당 조직, 임정 진강 이사
  • 1940
    (65세)
    임정 중경 이사, 주석으로 선출
  • 1941
    (66세)
    임시정부 일본에 선전포고
  • 1942
    (67세)
    좌파, 임시정부에 참여
  • 1945
    (70세)
    신탁통치 반대 총동원위원회 조직
  • 1946
    (71세)
    비상국민회의 조직
  • 1947
    (72세)
    반탁독립투쟁위원회 조직, 백범일지 출간
  • 1948
    (73세)
    북행하여 남북연석회의 참여
  • 1949
    (74세)
    안두희에 의해 총에 맞아 경교장에서 운명, 효창원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