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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구 정신, 세계에 널리 알리려 ‘유네스코 인물’ 신청했죠”-한겨래 2025.07.17
작성자 admin 작성일 2025-07-21

박유철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장이 11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국민이 다 잘 알겠지만 김구 선생(1876~1949)은 일생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셨어요. 하다못해 가족까지 희생시켰죠. 1945년 광복을 앞두고 큰아들(인)이 폐병으로 돌아가셨는데요. 페니실린을 주면 낫는 병이었어요. 하지만 임시정부 주석인 김구 선생은 동포들이 다 고생하는데 어떻게 내 아들만 주느냐고 하셨죠. 이런 마음으로 나라와 동포를 위해 희생한 분을 나라가 안 모신다면 말이 안 되지요.”

 

지난해 취임한 박유철(87)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이하 협회) 회장에게 왜 백범을 숭모해야 하는지 묻자 나온 말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김구 선생은 윤봉길을 희생시켜 1932년 훙커우 공원 투탄 의거를 일으켰고 2차 대전 때는 광복군을 결성해 일제와 싸웠어요. 이런 노력이 있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강대국들이 점령해 차지했을 겁니다.” 

 

그는 ‘독립운동가 후손 1호 국가보훈처장’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부터 3년 동안 국가보훈처장을 지냈다. 그의 조부는 임시정부 2대 대통령을 지내고 ‘한국통사’,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을 쓴 박은식 선생(1859~1925)이다. 부친은 광복군에서 활동한 공적 등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은 박시창 선생(1900~86)이다. 외조부는 백범의 제자이면서 상해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한 최중호 선생(1891~1934)으로 독립장 서훈을 받았다.

박 회장이 보훈처장 때인 2005년 여운형·권오설 등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서훈이 처음 이뤄졌다. “1945년 이전에만 사회주의 활동을 한 분 대상으로 서훈이 이뤄졌죠.”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백범김구기념관 건립위원장을 맡아 2년 뒤 개관을 이끌었다. “큰 영웅인 김구 선생을 모실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영광이죠. 지금 자리도 그렇고요. 사실 우리 부모님이 김구 선생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김구 선생 숭모 활동은 이런 은혜를 갚을 좋은 기회이죠.”

그는 이어 아버지가 중국군 연대장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운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부친이 항일 전투 일선에서 잠시 물러서 중국 육군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시기였어요. 수입이 없어 매우 곤궁해 장사라도 해보려고 김구 선생을 찾아가 사정을 말하니 당시로는 큰돈인 천원을 빌려주셨대요. 또 어머니가 상해 인성학교 다닐 때는 김구 선생이 어머님이 졸업식 때 입을 옷이 없다고 하니 옷 살 돈까지 챙겨주셨어요. 외조부와 김구 선생은 상해 시절 한집 위아래 층에 살 정도로 인연이 깊었죠.” 백범과 박은식 선생 그리고 그의 외조부는 모두 황해도 출신이다. “김구 선생이 조부를 무척 존경했다고 합니다.”

1938년 상해에서 난 그는 어린 시절 충칭 임시정부 청사에서 김구 선생의 품에 안긴 기억도 있다. “부모님과 함께 청사에 가니 김구 선생이 저를 보고 굉장히 귀엽다고 안으셨어요. 어린 마음에도 얼굴에 살짝 곰보 자국이 있던 김구 선생이 굉장히 인자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협회를 이끈 뒤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 둘이 있다. 하나는 내년 김구 탄신 150년을 기념해 지난해 말 신청한 ‘유네스코 지정 세계 기념 인물’에 선정되는 것이다. 50년이나 100년 등 주기를 맞는 인물을 대상으로 선정하는데 한국은 앞서 다산 정약용과 김대건 신부가 선정되었다.

 

내년 탄신 150년 맞아 지난해 말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 기념 인물’ 신청
“부국보다 아름다운 문화국가 원한
김구 정신은 유네스코 이념과 같아
선정 위해 정부 외교적 노력 절실”
“김구·윤봉길 등 독립운동가 7명
묘 있는 효창공원, 국립묘지 지정을”

‘한국통사’ 저술 박은식 선생 손자
독립운동가 후손 첫 보훈처장 지내

“김구 선생은 우리가 부국이나 군사적으로 강성한 국가보다는 아름다운 문화 국가가 되길 원하셨어요. 이는 평화와 문화 다양성 존중 등이 핵심 가치인 유네스코 이념과 같아요. ‘유네스코 인물’ 선정은 백범이라는 인물과 그 사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그는 “지난해 신청 이후 대선까지 나라가 혼란스러워 한국 외교부에서 이 일에 역할을 거의 못해줬다”면서 “지금이라도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선정 결과는 오는 11월께 나온단다.

두번째 사업은 독립운동가(김구·윤봉길·이봉창·백정기·이동녕·조성환·차이석) 묘와 안중근 열사 가묘가 조성된 효창공원 애국선열묘역의 국립묘지 지정이다. “애초 효창공원은 조선 왕가 묘지인 효창원이었는데, 일제가 군 주둔지로 쓰고 골프장까지 만들어 훼손했어요. 이걸 보고 김구 선생이 민족정기를 세우려고 1946년 독립운동가 묘역을 조성하고 자신의 묘도 썼죠.”

백범 별세 뒤 이승만 정권은 추모 열기를 차단하려 효창원에 철조망을 설치하고 경찰까지 배치해 애국열사묘역 출입을 통제했단다. 또 국제대회 유치를 빌미로 축구장까지 만들어 묘역 일부를 훼손했다. “우선 효창공원을 국가가 관리하는 임시정부 현충원으로 만든 뒤 구체적인 성역화 방안은 추후 논의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백범 공식 추모식은 11주기에 처음 열렸다. 이승만이 3·15 부정선거로 권좌에서 쫓겨나고 두달 뒤인 1960년 6월26일이었다. 박 회장은 1949년 안두희 흉탄에 서거한 김구 선생 장례식을 라디오 생중계로 들었단다. “방송에 사람들이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려 매우 슬펐어요.” 

그는 독립운동을 깎아내리는 사회 일각의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는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를 세우면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안 한 게 출발이었죠. 친일파들이 재력도 있고 교육도 많이 받아 나랏일에 많이 쓰였어요. 정권을 잡고 경제력도 있으니 자기 조상에 대한 부끄러움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은근히라도 자꾸만 독립운동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지금은 나아진 편”이라며 “이승만 정부 초창기엔 중국에서 독립운동 한 사람들이 탄압을 우려해 독립운동했다는 말을 못 했다”고 했다.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목숨 내놓고 독립운동했는데 독립운동했단 말을 못 하다니요. 우리 부모님도 그때 아주 조심했어요. 이런 문제는 빨리 답을 찾으면 좋겠어요.”

올해는 박은식 서거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오는 11월 박은식 선생의 생애와 공적을 다루는 2건의 학술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박 회장에게 조부는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할아버지는 나라는 망했지만, 국혼은 살아있다고 하셨어요. 혼에 호소하신 거죠. 얼마나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까? 역사를 정립하면 나라는 죽지 않고 언제든 돌아온다는 생각에 우리 역사와 독립운동 역사를 정립하셨죠. 제가 초등이나 중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받고 나중에 보니 다 조부가 정립한 내용이더군요. 조부는 또 임정이 거의 망해가고 있을 때 2대 대통령에 취임해 짧은 기간에 임정을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후두암으로 굉장히 고생하시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셨어요. 임정에 사표 낸 뒤 얼마 안 돼 돌아가셨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